
2025년 예정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으로, 특히 ‘이사의 주주에 대한 직접적 책임 부여’ 조항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그 이유와 파급 효과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 그리고 이 개정이 기업 경영에 미칠 수 있는 리스크를 세부적으로 분석합니다.
이사의 책임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2025년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직접 책임’입니다. 현행 상법은 이사가 법적 의무를 위반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회사가 직접 손해배상 청구의 주체가 됩니다. 주주는 파생소송의 형식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청구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제약을 동반해왔습니다.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정 요건에 부합하는 주주는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 조항은 이사의 권한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를 가능케 하며, 주주의 권익 보호 측면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제도입니다. 특히 대주주에 의한 전횡이나, 소수주주의 권익 침해 문제가 빈번히 제기되어온 국내 기업 환경에서는 일종의 제도적 해법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로,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있어 상당한 위축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사들은 법적 책임 가능성이 상시 존재하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과감한 투자나 신사업 추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둘째, 이사의 개인 책임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유능한 외부 인사들의 이사회 참여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법적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은 곧 이사직 자체의 매력을 낮추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주’의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소액주주, 혹은 투기성 외국 자본이 경영에 의도적으로 개입하거나, 이사의 행동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상법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우려되는 부분으로, 재계는 이러한 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법적 안정성과 기업 자율성 사이의 균형이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그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취지는 타당하지만, 제도의 설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기업 활동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재계의 주요 반대 논리
재계는 이번 상법 개정안을 ‘과도한 규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며 성장하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인해 이사 개인의 법적 책임이 강화되면, 결과적으로 기업 전체가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입니다. 특히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과도한 외부 통제를 초래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경영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서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구받습니다. 하지만 이사의 판단에 대해 사후적으로 주주가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구조는 이사회 내 긴장을 유발하고, 기업의 대응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실수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한 손실까지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큽니다.
또한, 재계는 ‘남소(濫訴) 리스크’를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직접 소송이 허용되면, 일부 소액주주나 경영권 분쟁을 노리는 외부 세력이 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송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경영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심지어 합의금 유도를 위한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송 리스크는 결국 법무비용 증가, 평판 리스크, 그리고 경영진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와 달리 다층적 견제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는 해외 기업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상법은 이번 개정으로 오히려 투자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의 경우 이사 책임에 대한 일정 수준의 면책 조항을 인정하고 있으며,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적용해 사후적 판단보다는 의사결정 당시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책임을 묻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러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의사결정 공간’을 지나치게 좁힌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이 개정이 도입될 경우, 유능한 인재 확보가 어려워지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개정안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잠재적 리스크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단기적인 법적 변화뿐만 아니라 기업의 문화, 조직 구조, 그리고 인사 전략 전반에 걸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첫 번째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날 변화는 경영 판단에 대한 위축입니다. 리스크를 수용하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기업 성장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그러한 리스크 수용을 '법적 책임'이라는 부담으로 전환시켜버립니다.
둘째, 이사회 구성 방식의 변화입니다. 이사직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외부 인사들이 이사직을 기피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이사회로 이어질 수 있으며, 다양성과 투명성이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는 기업의 혁신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셋째, 법무비용의 상승과 내외부 갈등의 증가입니다. 주주 소송의 빈도가 높아지면, 기업은 예방 차원에서 더 많은 법률 자문을 받게 되고, 이에 따른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업 내부에서 이사와 주주, 혹은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내적 안정성에 큰 위협이 됩니다.
넷째로는 해외 투자자 및 글로벌 파트너의 신뢰 저하입니다. 한국 기업이 너무 많은 법적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해외 자본의 유입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일부 외국계 투자사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한국 기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리스크는 기업 경영 효율성의 저하로 귀결됩니다. 법적 안정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기업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습니다. 제도는 균형이 중요하며, 지나친 개입은 기업 생태계의 유연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결론
상법 개정안이 내포한 의도는 분명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주주의 권익 보호, 투명한 경영 구조 확립 등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의도와 현실은 항상 간극이 존재합니다.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그 간극이 너무 크고,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 책임과 기업 자율성은 상호 충돌하는 요소가 아니라, 균형을 통해 상호보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면책 조항이나 경영판단의 원칙 등과의 조화를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입법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법률 개정이 실제 산업 현장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치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법적 책임성을 다할 수 있는 ‘균형 잡힌 법제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