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재 시장에서 흥미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의 생산 중단으로 철강 수급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구리 가격은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과 정책 변화, 그리고 시장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철강과 구리 시장의 반대 흐름이 발생한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와 구리가격 전망과 투자 아이디어를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제철 생산중단, 왜 일어났나? 경기침체와 공급과잉
현대제철 인천공장의 생산 중단은 철강업계 내부의 기술적 문제나 단기 수급 조절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한국 제조업계가 처한 복합적인 구조적 위기와 글로벌 경제의 둔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지속된 경기침체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일시적 반등을 기대했던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 모멘텀을 잃었고, 특히 건설·조선·자동차 등 철강 주요 수요 산업의 회복이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그 결과 철강재의 내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고,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줄여 수익성을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두 번째는 중국발 공급과잉입니다. 세계 철강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국영 제철소들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을 이어왔고, 이 철강재들이 저가로 해외 시장에 유입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철강 가격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 하반기부터 중국 철강재가 동남아·중동을 거쳐 국내로 재수입되며 국내 철강사들의 마진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현대제철의 인천공장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이라 저가 공세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시장 위축과 수요 감소는 고급 제품군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원재료 단가 대비 제품 단가의 마진율이 줄어들고, 공장 가동률이 70% 이하로 떨어지면서 설비 유지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인력 재배치와 유휴 설비 보존에 대한 의견 차이도 갈등을 키웠고, 결국 회사 측은 인천공장을 일시 가동 중단하며 수익성 개선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철강업계 전반에 '공급 조절'의 신호로 해석되지만, 역설적으로 철강 가격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에는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구조, 특히 중국발 물량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구리값 상승의 핵심: 남미 생산 감소와 트럼프발 관세 여파
철강과는 달리, 최근 구리 시장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며 가격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구리의 주 생산국은 칠레, 페루 등 남미 지역이며,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광산 인력 부족과 물류 문제로 인해 채굴 및 정제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 감소의 영향이 아직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칠레의 세계 최대 구리광산 중 하나인 '에스콘디다'는 2020~2021년 동안 약 20% 가까이 생산량이 감소했으며, 여전히 인력 충원과 설비 정상화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페루 역시 정치적 불안정과 노동쟁의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생산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구리 공급은 회복 속도가 더딘 반면, 친환경 전환, 전기차, 배터리 산업 등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트럼프 정부 시절 부과되었던 관세 정책의 후폭풍입니다. 당시 미국은 중국산 제품 및 원자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이에 따라 미중 간 교역 불확실성이 커지자 많은 기업들이 장기적 공급망 위험을 대비한 구리 사재기에 나섰습니다. 이 사재기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여러 산업군이 '예비 재고' 확보를 전략적으로 진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여 동시다발적이고 과감한 보호무역 조치가 시행되자, 시장은 이를 '관세 리스크'로 해석하고 구리 등 전략 자원의 조기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격 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철강은 공급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억눌리고 있는 반면, 구리는 공급 부족 + 수요 증가 + 정책적 불확실성이라는 삼중의 요인으로 인해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산업별 구조가 다를 경우 동일한 '공급망 이슈'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왜 이 흐름은 비정상인가? 시장이 보내는 경고
현대제철의 생산 중단과 구리 가격 상승이라는 두 개의 사건은 단편적으로 보면 무관해 보일 수 있으나, 산업구조와 공급망, 정책 리스크가 얽힌 거대한 흐름 속에서는 서로 연관된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철강 시장은 수요 감소와 공급과잉이라는 전통적 구조 하에서 가격이 억제되고 있는 반면, 구리는 과거의 공급 공백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미래 수요 증가와 정책 불확실성에 따라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급 불균형이 공급 부족이 아닌 정책과 시장 심리에 의해 과도하게 가격에 반영되는 구조는 ‘비정상적인 시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 제조업체, 정책 당국 모두에게 중요한 시그널입니다. 공급망은 단순한 물류 흐름이 아닌, 정치·경제·기술·환경 등 복합적 변수에 따라 요동치며, 단 하나의 변수만으로도 특정 자원의 가격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단기 시세 변동보다 중장기적 자재 확보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정부는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투자자는 시장의 수급 논리뿐 아니라, 그 이면의 글로벌 흐름과 정책 리스크를 함께 분석하는 통찰력이 요구됩니다. 이제는 단순한 공급-수요 분석만으로는 시장을 읽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아마도 구리에 대한 관세가 시행되더라도 현재 사재기한 구리로 인해서 급격한 가격상승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철광석가격은 큰 변동이 없는 반면 구리가격은 상승해 있습니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투자전략을 세워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